김홍도
김홍도는 영조 21년인 1745년에 태어난 화가입니다.
경기도 안산에서 태어났으며, 위 그림은 김홍도의 초상화로 북한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그림입니다. 김홍도의 초상이 정말로 맞느냐는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근거가 전혀 없는 다른 초상보다는 그나마 진짜 초상이라고 인정받는 그림입니다.
김홍도의 호는 단원인데, 세월호 참사로 인해 많은 상처를 갖고 있는 안산의 단원구라는 지명과 단원고라는 학교 명은 여기서 따온 것입니다.
김홍도의 인생
김홍도는 하급 무과 집안의 무녀독자로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 때 부터는 관직에 진출하지 못하여 김홍도가 태어났을 때 김홍도의 집안은 이미 양반이 아닌 중인까지 내려온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조선시대의 또 다른 뛰어난 화가인 강세황에게 천거되어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김홍도의 재능을 알아본 강세황을 스승으로 섬기게 됩니다.
그리고 1771년에는 훗날 정조가 되는 왕세손의 초상을 그리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으며, 10년 후인 1781년에는 왕으로 즉위한 정조의 초상화를 그리는 어진화사가 됩니다.
이후 일본의 지도를 그려오라는 밀명을 받고 떠나거나, 정조의 아버지의 무덤 근처에 있는 절의 대웅전의 불화를 맡는 등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여러가지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말년에는 여러 업적들로 인해 1795년 연풍의 현감을 맡기도 했지만 오래지 않아 사임하며 그림 그리는 것에 전념하였습니다.
살아 생전 풍속도, 산수화, 춘화 등 여러가지 그림을 남겼기 때문에 국가 권력을 중심으로 저술 된 실록에 없는 민간 백성들의 삶이 자세하게 그림으로 남았기 때문에 김홍도가 남긴 그림들은 역사학적으로도 가치와 의미가 깊으며, 그 대부분이 보물로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다만 사망에 대한 기록이 분명치 않은데, 나이가 60이 되는 1805년에 위중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위중하다는 기록이 있을 뿐 그로인해 사망했다는 말은 없고 이후 기록이 없기 때문에 대체로 1810년 전후에 사망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홍도의 산수화와 실제 사진 비교
김홍도가 그린 취객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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