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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

일본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정리

by DELPIERO 2024. 3. 20.

일본 도쿄

일본의 도쿄는 일본 인구의 10분의 1이 넘는 1,400만명이 살고 있는 일본의 도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쿄를 일본의 수도로 알고 있는데, 일본의 중앙부처와 대부분의 행정부, 입법부 조직이 위치하고 있어서 암묵적으로 수도라고 할 뿐, 일본은 법적으로 명시해서 도쿄를 수도라고 정해놓지는 않았습니다.

도쿄는 전국시대의 유명한 다이묘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 막부 이전 전국 시대까지는 과거 일본의 수도인 교토와도 멀고, 땅도 착박한 늪지여서 작은 해안 마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국시대를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기존 영토를 반납하고 새로운 영지를 하사받았는데, 그곳이 바로 에도 지방, 지금의 도쿄 지역입니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 지방을 개간하고 개발하여, 도요토미 사후 권력 다툼에서마저 승리한 후 명실상부한 일본 최고의 지역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일본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이렇듯 일본의 도쿄는 수백년 간 일본의 중심이자, 천만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도시인데, 그런 도쿄의 지하철에서 1995년 3월20일, 독극 물질인 사린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건이 벌어진 시간는 오전 8시 경이어서 때마침 출근으로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피해가 극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14명이 사망하고, 6,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주동자

지하철 사린 사건을 일으킨 주동자는 옴진리교의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라는 사람과 그 교인들입니다.

아사하라 쇼코는 1955년에 태어난 중년 남성이었는데, 본명은 마츠모토 치즈오입니다.

아사하라 쇼코가 사이비교인 옴진리교를 창설하게 된 계기는 요가에 심취하게 된 쇼코가 공중부양이라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됐는데, 이러한 모습이 1985년 오컬트 잡지인 무(Mu)에 실리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 아사하라 쇼코의 옴진리교를 믿게 된 것입니다.

해당 사진은 합성 같이 보이지만, 단순히 하체의 유연성과 힘을 통해 바닥에서 뛰어오른 것이라고 하는데, 마음과 의지가 약한 사람들을 홀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1987년과 1988년 각각 한번씩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와도 접견하면서 옴진리교의 광고와 선전에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사하라 쇼코는 커져가는 교세로 인해 조금씩 과대망상에 빠지게 되었는데, 자신이 재림한 예수일 뿐만 아니라 일본의 권력자가 되어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과대망상은 살인에 대한 정당성마저 자신들에게 있다고 믿고 있던 중, 일본 정계 진출을 위한 선거에서 참패하고 공중파 방송을 통해서 아사하라 쇼코의 진리당의 득표수가 1,783표 뿐이라는 굴욕까지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거의 참패가 자신들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국가가 선거조작을 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아사하라 쇼코는 선거에서 진 후 이루어진 집회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확실하게 말해 참패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참패였냐고 하면, 이것은 사회에 진 것입니다. 아니면,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국가라는 것에 진 거라고 결론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결과를, 여러분이 어떻게 분석할 지는 모르겠지만, 전 처음에는 혼자서 홀린 것 같은 상태로 그 결과의 추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결과가 결정된 이후에는, 장녀 두르가(ドゥルガー), 그리고 삼녀 우마 파르바티(ウマー・パールヴァティー)가 "아버지, 어떤 조작(トリック)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랬습니다. 즉, 선거관리위원회를 포함한 대규모의 조작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제 자식들이 저에게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는대로, 진리당의 기초표는 1만 수천표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1만 수천표가, 적어도 기초표일 그 1만 수천표가 모두 투표되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온 건 겨우 1천 수백표.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도쿄주변, 즉 치바, 사이타마, 카나가와의 표는 그대로 나왔지만, 도쿄의 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즉, 생각할 수 있는 건, 선거관리위원회 주도의 커다란 조작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말이죠. 이건 즉, 국가에게 진 것입니다. ”

지하철 사린 사건 발생

결국 아사하라 쇼코와 옴진리교 교인들은 1995년 3월20일, 일본 도쿄의 지하철로 향했고, 출근 중이던 사람들 앞에서 사린을 퍼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날의 광경을 일본의 대문호인 무라키미 하루키의 저서 언더그라운에서는 아래와 같이 표현했습니다.

때는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기분 좋게 맑게 갠 이른 봄날 아침이었다. 바람이 아직 차가워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모두가 외투 차림이었다. 바로 전날은 일요일, 그 다음 날은 공휴일. 즉, 징검다리 휴일 사이에 낀 평일이었다. 어쩌면 당신은 '오늘 하루는 쉬고 싶었는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당신은 휴가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은 평상시와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옷을 챙겨 입고 역으로 향한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혼잡한 지하철에 몸을 싣고 회사로 향한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아침이었다. 인생 가운데 구별할 수 없는 단 하루였을 뿐이다.
 
가발을 쓰고 가짜 수염을 붙인 젊은 남자 다섯 명이 갈개로 뾰족하게 갈아둔 우산 꼬챙이로 기묘한 액체가 든 비닐봉지를 찌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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