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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대 7대 불가사의 정보 정리 (로도스의 거상, 쿠푸왕 대피라미드, 제우스 상 등)

by DELPIERO 2023.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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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불가사의


7대 불가사의(Seven Wonders of the World)란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이 당시 기준으로 "신기하고 경이로운 건축물"들을 모아 선정한 것입니다.

한 때는 불가사의라는 한자어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는 무언가로 해석되어서,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같이 인간이 지었다고 믿을 수 없고 그 기원에 대한 의문을 가진 건축물들로 이해되기도 하였으나, 불가사의들의 기원과 인류에 의한 건축 근거는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지금은 앞서 말한대로 경이로운 건축물 정도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7대 불가사의의 기원


7대 불가사의를 최초로 정의한 사람은 그리스의 시인인 안티파트로스입니다.

안티파트로스는 자신의 시에 자신이 직접 보고 놀랐던 건축물들을 적어넣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에서 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지중해 연안의 건축물들만으로 7대 불가사의가 선장되었습니다.

안티파트로스의 7대 불가사의 시


have gazed on the walls of impregnable Babylon along which chariots may race, and on the Zeus by the banks of the Alpheus, I have seen the hanging gardens, and the Colossus of the Helios, the great man-made mountains of the lofty pyramids, and the gigantic tomb of Mausolus; but when I saw the sacred house of Artemis that towers to the clouds, the others were placed in the shade, for the sun himself has never looked upon its equal outside Olympus.

나는 전차들이 그 옆을 따라 경주 할 법한 난공불락의 바빌론 성벽과, 알페우스 강변의 제우스를 목도하였다.

공중정원과 태양의 거상과 장대한 인공산이라 할 만한 높다란 피라미드와 거대한 마우솔로스의 묘를 보았다.

그러나 내가 구름에 닿을 만큼 우뚝 서있는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전당을 보았을 때, 모두가 그 그늘에 가려졌으니, 태양마저 올림푸스 밖에서 그와 견줄만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고대 7대 불가사의


그리스의 시인인 안티파트로스 이후로 고대 7대 불가사의를 지정한 글들은 여러개가 있긴 합니다. 안티파르토스의 7대 불가사의는 기원전 2세기에 기록된 것인데, 바로 1세기 뒤인 기원전 1세기에 같은 시인인 마르티알리스는 제우스 상과 로도스의 거상을 빼고, 콜로세움과 델로스 섬의 동물뼈 제단을 뽑기도 하였습니다.

나아가서 6세기에는 그레고리우스 투로넨시스가 세계 7대 불가사의 목록을 다시 정리했는데, 이 때는 바빌론의 성벽을 제외하고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를 추가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7대 불가사의가 사실상 가장 유명한 고대 7대 불가사의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고대 7대 불가사의에 대해서 설명하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지중해 연안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서 세계 도처에는 7대 불가사의 외에도 경이로운 건축물이 많으니, 7대 불가사의가 단순히 당대의 최고의 건축물을 꼽은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경계가 필요합니다.

로도스의 거상

7대 불가사의 중에 첫번째는 로도스의 거상입니다. 말 그대로 로도스 섬에 건축된 청동 동상이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동상이 지어진 이유는 정복자 알렉산드로스의 장군 중 한명이 세운 왕조인 안티고노스 왕조가 로도스 섬을 공격했을 때 로도스 섬은 엄청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막아내었는데, 그 때 포위군이 남겨놓고 떠난 무기들을 처분하여, 섬의 수호신인 태양신 헬리오스에게 승전 기념물을 바치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로더스의 거상은 굳이 안티파트로스가 지은 시 외에도 다양한 기록에서 발견 될 만큼 로도스 섬의 랜드마크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을 주었지만, 건축 56년만인 기원전 224년에 지진으로 인해 쓰러졌습니다.

이후 이집트의 파라오인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재건에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하였지만, 로도스 정부는 그들이 믿는 델포이 신탁에 따라 재건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그대로 방치 된 후 800년이 지난 6세기에 이르러서 이슬람 우마이야 제국이 로도스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전부 고철로 팔아버리며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창작물에서 로도스의 거상이 다른 지축에 두 발을 딛고, 그 사이로 배가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실제 로도스의 거상은 당시의 건축 수준으로 양발을 다른 두 곳에 배치시키고 유지시킬 기술이 없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아래의 그림이 아닌 위 그림과 같은 형태로 건축되었을 것이라는 게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기자의 대 피라미드


이집트 기자에 위치한 쿠푸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대 피라미드가 두번째 불가사의입니다.

기자에는 쿠푸왕의 대 피라미드 외에도 두 개의 피라미드가 더 존재하는데, 각각은 쿠푸왕과 비슷한 시기의 후대 파라오인 카프레와 멘카우레의 피라미드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큰 대 피라미드는 기원전 26세기 경에 지어졌으며, 건축에 27년이 소요되었습니다. 지금은 돌 무더기 처럼 보이지만, 건축 당시에는 외벽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피라미디온이라고 불리는 정상의 꼭지점은 금으로 덮혀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힘이 약해지고, 주변 건축을 위한 자재로서 사용하기 위해 피라미드의 석회암을 뜯어가면서 지금의 피라미드 형태로 변화해 갔습니다.

역사 기록에는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에 의해 처음 등장하는데 놀라운 것은 그 때도 이미 피라미드가 건축 된지 2,00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정 체제를 갖고 있던 그리스 출신의 헤로도토스는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노예나 백성을 착취하여 지었을 것이라고 묘사하였고, 최근까지도 다양한 미디어에서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고고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일강이 범람하여 농사를 짓지 못하고 할 일이 없는 시민들에게 봉급을 주면서 피라미드를 지었을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피라미드의 내부에는 왕의 방, 왕비의 방, 지하방, 대회랑 등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이것들은 대부분 1900년에 이르러 발견 되었습니다. 하지만 내부는 이미 도굴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아, 정확히 무엇을 보관했는지, 방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지금도 계속해서 연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21세기에 이르러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이 대 피라미드 뿐입니다.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은 기원전 435년에 지어졌습니다.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내부에 조각가 페이디아스에 의해 8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이러한 기록은 1958년에 제우스 신전 근처에서 제우스 상을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업장이 발견되면서 밝혀진 것으로서 그 전에는 실물도 남아있지 않고, 소문과 기록으로만 존재했기 때문에 실존 여부가 확실하지 않았었습니다.

제우스 상은 475년에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었으며, 522년과 551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흔적도 찾기 어려웠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426년에 로마가 국교를 기독교로 정하면서 전통 종교의 하나였던 그리스 신화가 탄압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로마 전역에 신전 파괴령까지 내려지며 사실상 관리가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우스 상의 소실은 예견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제우스 상의 위엄과 아름다움은 여러 기록을 통해 전해져 내려왔는데, 제우스 상의 중심은 삼나무로 조각되었으며, 그 주변을 상아로 둘렀고, 황금으로 제작된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흑단을 비롯한 각종 보석으로 치장해서 매우 아름다웠으며, 높이가 90cm, 폭이 6.6m인 기단의 위에 세워져서 높이가 높았고, 순수 제우스 상의 높이만 해도 약 12m에 달해 신전 천장에 머리가 닿았다고 합니다.


지속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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